스물 다섯 그리고 스물 하나. 그리고 피천득.
- 여유만만
- 2022. 4. 4. 16:40
화제의 드라마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종영됐다.
시종 우리를 궁금하게 했던 "나희도"와 "백이진"의 사랑이 이뤄지는가의 여부는 많은 시청자들의 아쉬움으로 남겨놓은 채.
잘난 척을 좀 하자면 나는 드라마의 중반부터 두 사람은 이루지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.
부모가 된 나희도와 고유림의 만남이 드라마에 등장하지 않아 둘 중 한 사람이 사망한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하긴 했지만 두 사람의 인연은 끝까지 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.
물론 드라마 초반에는 수 많은 유투버들의 억측에 나도 편승해 그랬으면 하는 바램과 "때구"로 두 사람이 잘 될만한 건덕지를 찾기 바빴다.
그러던 중 피천득의 수필 "인연"이 떠올랐다.
대한민국에서 입시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 없는 수필이 인연이다.
아사코, 명자가 등장하는 그 수필은 이 드라마를 관통하는 정서다.
누구나 완성할 수 있는 문장..
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,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.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.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.
으로 끝을 맺는 어쩌면 대한민국 최고의 수필이다.
이 수필에서 작자와 아사코는 세번 만났다.
작자 나이 열일곱에 첫 만남은 초등학생 꼬마와 고등학생 오빠의 만남이다.
동경의 대상이자 그 시절 좋아하는 감정은 무엇으로도 발전하고 변할 수 있는 감정이다.
아사코는 작자의 목을 끌어안고 볼에 입마춤을 하면서 헤어지는 아쉬움을 달랬다.
두번째 만남은 좀 더 성장해서 두 사람은 만났다.
더 어색해진 만남이지만 두 사람은 어엿한 사랑을 할 수 있는 나이에 선남선녀로 잠시 만나고 헤어진다.
세번째 만남은 어른이 된 아사코를 만난 이야기다.
그 세번째 만남의 끝에 "내"가 생각하는 최고의 수필 문장이 등장한다.
희도와 이진은 두 번 만났다.
청춘 로멘스 물의 클리쉐를 잔뜩 담은 그 만남은 모든 청춘물이 그러하듯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난관을 만나 헤어짐으로 귀결된다.
그 어려움을 딛고 두 사람은 두번째로 만난다.
참으로 싱그럽고 즐거운 만남이다.
그 만남에 아픔이나 아쉬움 따위는 없다. 죽어도 여한이 없을 정도로 즐겁고, 설레고 사랑스러운 만남이다.
종국엔 두 사람이 두번째 헤어짐을 격는다.
하지만 두 사람은 세 번 만나지 않았다.
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.
드라마 첫회였던가?
희도의 엄마 서재경이 말한 "어제 이진이 봤는데.." 라는 말에서 "일생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." 가 떠오르지 않았다는 건 드라마를 보는 내 감각이 이제 한참은 무뎌졌기 때문이리라.. 싶다.